[Story]2014. 1. 25. 01:28
요즘 드라마 보는 재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송혜교에도 불구하고, "그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지 않았다. 작년에 첫회부터 최종회까지 본 드라마는 "상어"가 유일하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보다가 중단했고, "상속자들"도 보지 않았다. 요즘은 "별에서 온 그대"를 보다가 회사 일정 등으로 본방을 못 보면서 시들해졌다. 
"별그대"는 전지현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가, 외계인과 소시오패스 존재의 대결에 푹 빠져들려다가, 몇번 본방을 못 봤는데, 놓친 드라마를 챙겨볼 마음이 들지 않는다. 드라마가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인터넷기사" 때문이다. 날씨를 보려고 들어가도 제목만으로 놓친 드라마의 전체 줄거리를 알 수 있다. 지난 수요일에는 김수현이 시간을 멈추고 전지현에게 키스하는 이미지가 네이버 메인화면의 중간을 선점해 있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면서 이미 몰입을 방해했다. 인기있는 드라마는 다 그런 식이다. 사실 좋은 드라마는 줄거리와 대사가 탄탄하고, 그것을 연기자와 피디가 어떻게 풀어가느냐의 모든 구성요소가 잘 녹아들어가야 하는데, 줄거리와 대사가 이미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연기와 구성력에 눈길을 줄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윌레스 앤 그로밋"을 보러갔을 때는 2월의 어느 낮이었다. 내 주변으로 꼬마들이 가득했다. 뒤에 앉아 있던 꼬마가 고개를 쑥 내밀더니 내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쑥 날라가", "이제 저기서 넘어져", "이제 이제 이제" 그 꼬마는 처음으로 윌레스 앤 그로밋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이미 여러번 봐서 꼬마 특유의 중개방송을 내게 시행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윌레스 앤 그로밋이 밋밋한 클레이메이션으로 변해버렸다. 이제는 너도나도 그 꼬마가 되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제일 아쉬운 드라마가 "그겨울, 바람이 분다"였다. 노희경의 극과 송혜교, 조인성의 연기 어느하나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분명히 재미있을 것이다. 분명히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분명히 보고 또 볼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시작할 수 없는 것은, 그 "인터넷기사" 제목들이, 이미지들이, 나의 뇌를 선점하고 있어서, 오영의 외로움을, 오수의 슬픔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을 것 같아서이다. 그래서 조금 더 기억이 옅어진 이후에 볼 생각이다.
모든 드라마를 본방사수로 볼 수도 없는데, 이제 드라마를 봐볼까 결정했을 때 드라마스토리를 네이버메인화면의 뉴스제목만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다만 김빠진 콜라를 마시는 것과 같다. 단맛이 나는 까만 물을 즐길 수는 없는 노릇인데 요즘은 참 드라마 볼 맛이 안 난다.

반면,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다른 차원으로 중간에 중단해버렸다. 드라마가 시청률이 잘 나오면 마지막까지 그 시청률을 뽑아먹으려는 것이 방송국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렇게 구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좋은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쫀쫀한 구성력을 상실하게 된다. 중후반까지 드라마에 몰입하게 한 그 드라마만의 속도에 이미 익숙해져 있는데, 연장이 결정되는 순간 드라마가 엿가락 늘어나듯 늘어나게 된다. 그러면 쓸데없는 화면들도 많아지고, 쓸데없는 대사들도 많아지고, 회상장면도 많아지고, 어쨌든 많아지게 된다. 가야할 길은 100킬로미터인데, 20회에 거쳐 5킬로미터씩 1시간씩 움직이면 되는데, 갑자기 22회에 거쳐 오라고 하면 마지막 4회는 2.5킬로미터씩 움직여야 하니까 당연히 그런 일이 발생하게 된다. 처음부터 22회에 100킬로미터를 움직이는 것으로 정해져 있었다면 매번 1시간동안 4.54545454...킬로미터씩 움직이면 되지만, 마지막에 결정나면 1시간동안 가야할 길이 너무 짧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등장인물들 전체의 결과를 보여줘야 하고, 모두의 회상장면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갑자기 늦어진 속도감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잘 보던 드라마가 연장을 결정하면 드라마를 보지 못 한다. 재미도 없고 그런 결정을 한 방송국에 대한 개인적인 항의 차원이다. 그래서 "해를 품은 달"도 보기를 중단했다. 

시청자인 나에게 다시 드라마보기의 즐거움을 선물해 주면 안 될까. 인터넷 기사 좀 그만 내고 연장 좀 그만 하고, 드라마를 볼 때 그 쫀쫀함을 느끼면서 행복해 할 수 있게,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까...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