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개월말에 처음으로 해외를 다녀왔다. 물론 본인의 좌석이 있었다. 나이먹은 엄마는 좌석 없이 아이를 데리고 해외에 나갈 마음이 없었기도 하고, 소심한 엄마는 두돌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환기란 되지 않는 비행기에 태울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기 좌석을 차지하는 24개월이 되어서야, 해외에 다녀왔다.
해외라는 것이 의미가 있나. 어차피 공항에서 리조트로 들어가서 공항을 가기 위해 나올 때까지 단 한 번도 리조트를 떠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수영하고 바다에 다녀와서 또 수영하는 단조로운, 하지만 아이에겐 너무나 신나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런 말을 했다.
"누가 하늘에 공을 걸어놨어요?" - 낮에 나온 달을 보고 한 이야기.
"아저씨가 맘마를 방으로 갖다 준대요" - 룸서비스 메뉴. 그래서 호텔가이드북을 열어서, "음, 이건 할머니꺼고, 이건 할아버지 꺼고..."를 말하게 됨.
"저 신발 벗었어요" - 아이가 작아서 놀이터 미끄럼틀 탈 나이가 되었는지 물어본 다음에 놀 나이가 되면 신발을 벗어라라는 대화를 그전날 나눴는데, 그 다음날 또 다시 같은 방식의 아이가 몇 살인지 묻는 질문을 받자마자, 자기 발을 가리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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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하는 재미난 표현들은 사실상 부모로부터 전해진다. 어른의 언어를 아이가 해서 재미있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그 언어는 부모로부터 오는 것이 많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새삼 인과관계나 일의 순서를 상당히 중시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음식이 뜨거워서 그래.(식으면 먹겠다는 이야기)"
"책을 보려고 그래. 책을 보고 나서 신발을 신을 거야" (그리곤 신발을 꼭 정해진 장소에서 신고 벗어야 한다. 내가 언젠가 그 의자에 앉히고 여기서 신발을 벗을 거야 라고 한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기서 신발을 벗어야 한다)
엄마가 회사에서 돌아와서 할아버지/할머니 집으로 데리러 와야 우유를 사러 갈 수 있는 줄 아는 아이,
아침에는 본인은 토끼차를 타고 엄마는 회사에 가야 하는지 아는 아이,
해가 떠야 놀이터에 갈 수 있는 줄 아는 아이.
엄마만 토끼 볶음밥을 만들어주고, 곰돌이 볶음밥을 만들어주는지 아는 아이.
아이가 (나와 같은) 애어른이 되지 않기를, 나는 바라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는 본성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아이는 애어른이 되어 가고 있다. 미안하다.
"엄마 미워" (엄마가 구석에서 시무룩해 하자) "엄마 마음이 아파?" "엄마 이제 안 미워요" (엄마가 중간에 대답을 빨리 안 하면) "엄마 이제 안 미워요"라고 말하는 그런 아이, 우리.
엄마가 옷장으로만 가면 "엄마 뭐해요?" "엄마 옷 갈아 입어요?" "엄마 어디가요?" "엄마 우리 어디가요?"하고 물으며 자꾸만 눈치 보며 전전긍긍하는 그런 아이,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