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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5.07 [Sophie' Library]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의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
[Library]2013. 5. 7. 00:45



내가 그녀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루하기 그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그의 영화에서는 아름답고 가슴시린 휴식이 되어서 학부 시절부터 좋아하는 감독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2002)

The Wind Will Carry 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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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출연
베흐자드 도라니, 노그레 아사디
정보
드라마 | 프랑스, 이란 | 118 분 | 2002-11-22



이 영화를 본 지도 벌써 십년이 넘었고, 유쾌한 지루함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후에도 여전히 명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 제목이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이 제목은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에서 따왔다고 해서, 여느 때와 같은 궁금증으로, 시를 찾아 읽어보려고 애썼지만, 그 시절엔 블로그가 활성화 되었던 시절도 아니고, 무엇보다 이란어로 번역된 시가 한국에 있지도 않았고,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쉬워만 하다가, 지인이 영어로 번역된 시를 찾아서 메일로 보내주었었다.




The Wind Will Take Us

In my small night, ah
the wind has a date with the leaves of the trees
in my small night there is agony of destruction
listen
do you hear the darkness blowing?
I look upon this bliss as a stranger
I am addicted to my despair.

listen do you hear the darkness blowing?
something is passing in the night
the moon is restless and red
and over this rooftop
where crumbling is a constant fear
clouds, like a procession of mourners
seem to be waiting for the moment of rain.
a moment
and then nothing
night shudders beyond this window
and the earth winds to a halt
beyond this window
something unknown is watching you and me.

O green from head to foot
place your hands like a burning memory
in my loving hands
give your lips to the caresses
of my loving lips
like the warm perception of being
the wind will take us
the wind will take us.

Forugh Farrokhzad
Translated by Ahmad Karimi Hakkak

The Persian Book Review VOLUME III, NO 12 Page 1337




그리고 나서 이 시를 잊고 살았다. 시란 것은 늘 인생의 무게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가, 견딜 수 없는 인생의 시간이 오는 순간 불쑥 나타나서 사람을 흔들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주저앉게도 하는 존재이니, 가끔씩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 검색창에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검색한 이유는 나도 알 수 없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전을 다녀와서도 불쑥, 이런저런 인생사가 있을 때도 불쑥 검색해보곤 했다. 그리고 최근에 검색해 보고는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시집이 드디어 출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십여년만에 드디어 이란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시집이 출간된 것이다! (보통 제3외국어는 바로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고, 영어 등 타 언어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하기 때문에 문장이 매끄럽지 못하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저자
포루그 파로흐자드 지음
출판사
문학의숲 | 2012-08-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한 여성의 발전상!뛰어난 문학성, 극적인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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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포루그 파로흐자드


나의 작은 밤 안에, 아,

바람은 나뭇잎들과 밀회를 즐기네

나의 작은 밤 안에

적막한 두려움이 있어


들어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나는 이방인처럼 이 행복을 바라보며

나 자신의 절망에 중독되어 간다


들어 보라

어둠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지금 이 순간, 이 밤 안에

무엇인가 지나간다

그것은 고요에 이르지 못하는 붉은 달

끊임없이 추락의 공포에 떨며 지붕에 걸쳐 있다

조문객 행렬처럼 몰려드는 구름은

폭우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순간

그 다음엔 무

밤은 창 너머에서 소멸하고

대지는 또다시 숨을 멈추었다

이 창 너머 낯선 누군가가

그대와 나를 향하고 있다


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여

불타는 기억처럼 그대의 손을

내 손에 얹어 달라

그대를 사랑하는 이 손에

생의 열기로 가득한 그대 입술을

사랑에 번민하는 내 입술의 애무에 맡겨 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누군가가 이 시를 두고 사랑의 시라고 한 것을 보고 놀랐었다. 나의 의견은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푸르른 이'가 어떻게 그녀의 연인이 될 수 있는가. 포루그 파로흐자드의 일생을 모르더라도, 이 시는 밤의 시이며, 어둠의 시이며, 공포의 시이며, 죽음의 시이다. 


이란 테헤란 출신의 포루그 파로흐자드는 열여섯살에 사랑에 빠져 15살 연상과 결혼하지만, 부부가 살았던 작은 도시의 보다 보수적인 문화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된다. 이혼하게 되면 법에 따라 여성은 아들을 만날 수 없었고, 그녀의 상실감과 절망감은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케 한다. 이후에 그녀는 "포로", "벽", "저항", "또하나의 탄생"의 시집을 출판하고 "검은 집"이라는 다큐를 세상에 내고, 서른두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한국에 출간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은 그녀의 시선집이다. 그녀의 일생을 간략하게 훓어보았으니 첫 시집에 수록된 시를 한 편 더 소개한다.



포로


포루그 파로흐자드


당신은 열망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결코 당신 안에서 내 날개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의 하늘에는 수만 개의 태양이 빛나지만

나는 낡은 새장 속에 갇힌 한 마리 새이기에


춥고 어두운 철장 뒤에서

내 굶주린 시선이 어지러이 당신의 얼굴을 쫓는다

한 손을 내밀어 줄 거라는 생각에

날개를 펼쳐 당신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잠겨


나는 생각에 잠긴다

감시가 소홀한 틈에

이 침묵의 감옥으로부터 날아올라

간수에게 비웃음을 날리고

당신 곁에서 새 삶을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것이 망상이라는 것을

결코 이 새장에서 나갈 힘이 없다는 것을

새장 문이 열린다 해도

내겐 더 이상 날아오를 숨결이 없다는 것을


어김없이 찾아오는 눈부신 아침

철장 뒤의 한 아기가 나를 보며 미소 짓는다

내가 환희의 노래를 흥얼거리면

아기는 입맞춤으로 내 온 존재를 껴안는다


신이여

어느 날 내가 이 침묵의 감옥에서 날아간다면

우는 아기에게 어떤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겠는가

나를 내버려 두오, 나는 포로가 된 한 마리 새일 뿐


심장의 불로 이 폐허를 밝히는

나는 촛불

그 불을 끄리라 마음 먹는 순간

이 둥지는 무덤으로 변하리라





사실은 고민이다. 나는 보통 시집을 읽으면 독후감 등의 글을 바로 쓰지 않고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문득 그 때 그 시를 다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시를 읽어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 시집을 읽다 보면 마음 속에서 눈물이 흐르는 시들이 많아서 이 글에 시를 두어편 더 소개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욕심은 금물이다. 어느 날 어느 시간에 문득 마음 속에 기록해둔 어떤어떤 시들을 다시 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서른두살 짧고도 긴 인생을 사는 동안에 시인이 아파했을 그 세상은 이런 글 하나로 설명할 만한 것이 아니니 말이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