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2013. 4. 6. 22:52




선셋 파크

저자
폴 오스터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3-03-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저마다의 상실을 지닌 젊은이들의 이야기!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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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파크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가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을 찍는 일을 한 지도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중략) 집 하나하나가 실패의 이야기이다. 파산과 체납, 빚과 가압류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이다. 그는 무슨 사명처럼, 풍비박산한 그들의 삶이 마지막으로 남긴 흔적을 기록함으로써, 자취를 감춘 가족들이 한때는 여기에 있었으며, 그가 결코 볼 일도 없고 알 일도 없는 그 사람들의 유령이 빈집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버려진 물건들 속에 아직 남아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 (p7)



폴 오스터는 폴 오스터다. 한 번 책을 잡으면 빠져들게 하고, 다 읽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읽게 만든다. 책이 좋으면 마치고 나서 첫 장이나 첫 챕터를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선셋파크는 아예 두번째에도 완독을 하게 되었다. 두번째 읽으면서 작가가 얼마나 쫀쫀하게 은유나 상징을 사용하였는지와 사전 포석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깔아놓았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다.


금융위기가 닥치고 난 이후의 미국인들의 삶을 보여준다. 흔히 폴 오스터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극적인 사건 대신, 소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주인공은 마일스 헬러 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등장하는 이들 모두의 성장 소설에 가깝다. 그 성장은 비단, 청소년에서 어른이 되었어요! 류의 흐름이 아닌, 금융위기 시대를 겪어내고 있는 전 미국인들에게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작가는 앨리스의 논문을 핑계로, 베트남 전쟁 이후의 참전 용사들의 삶을 위기 이후의 미국인들의 삶에 적절히 포함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 “우리생애 최고의 해"라는 영화는 곧 마일스가 찍는 버려진 물건들의 사진으로 현대화되며, 동시에 빙의 “망가진 물건들의 병원"으로 연결된다. 



그들은 다 제정신으로 귀향했어도 평생 망가진 채로 살았으므로 전쟁 이후의 세월조차 여전히 전쟁의 일부였고, 악몽을 꾸고 땀을 흘리는 밤이 계속 되는 나날, 주먹으로 벽을 치고 싶은 나날들이었다. (p112)



그(빙 네이선)가 보기에는 태어나기 거의 20년 전에 시작된 베트남 전쟁 이래로 한때 <미국>으로 통했던 개념은 이제 다 소진되어 버렸다. (p80)



그런 이유로 그는 3년 전 사업을 시작했다. 반격하고 싶어서였다. <망가진 물건들의 병원>은 파크 슬로프 5번가에 있었다. 간이 세탁방과 중고 옷가게 사이에 위치한 그의 가게는 점포 앞에 판을 깔고 수동 타자기, 만년필, 기계식 손목시계, 진공관 라디오, 전축, 태엽 감는 장난감, 사탕 뽑는 기계, 다이얼식 전화기 등 이제는 지상에서 자취를 감춘 시대의 물건들을 수리하는 일만 하는 초라한 장사였다. (중략) 그는 반세기 전의 해묵은 사업에서 만들어진 다 낡아 빠진 물건을 또 한 점 대할 때마다 전쟁에 임하는 장군과도 같은 의미와 열정으로 임했다. (p81)



또한 가장 미국적인 야구의 선수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등장 인물들을 묘사한다. “럭키"는 실제로 럭키가 아니며 명시적인 사건들 외에는 운이 좋지도 않고, 주목받지도 못한 채 살아, 어느날 부고에 실리게 되는 이야기는 어쩌면, 우리 모두의 당연한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 폴 오스터는 도입부분에 아예 이렇게 기술해 둔다. 



(생략) 그가 지난달 헌책방에서 2달러를 주고 산 2천7백 페이지의 1985년 개정 최신 증보판(“야구 백과사전”) 속에 담긴 디킨스적인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p36)



“디킨스적인 정신"으로 다양한 야구선수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동시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양한 시각에서 기술한다. (디킨스적인 정신이란 많은 인물들을 통해 다양한 방식의 시점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듯 하다...)


작가의 상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일스가 필라를 만났을 때 각자 읽고 있었던 책은 “위대한 개츠비"였다. 화려하게 포장되어 있던 “아메리칸 드림"의 실체가 드러나는 작품을 전형적인 미국의 지식인 계층 출신의 마일스와 쿠바 이주민 필라가 동시에 읽고 있었다. 또, 메리-리가 극장에 서기 위해 뉴욕으로 오게 한 작품은 “행복한 날들"이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로 유명한 사무엘 베게트의 작품으로, 1부에서는 하반신만 흙에 묻혀 있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2부에서는 목을 제외하고 전신이 흙에 묻힌 채로 독백하는 이 부조리 극을, 폴 오스터는 마일스 가족들이 화해하는 시점에 끌어들인다. 인간 존재와 관계의 덧없음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혹은 그 반대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함인가. 소설의 결말을 보면 아마도 후자이겠지만, 읽는 동안 계속 고민하게 만든 극적 장치였다. 


극적 장치라고 쓰고 나니 또 재미난 것이 메리-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부분은 희곡처럼 지문도 함께 서술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제 잊어라, 마일스. 그건 사고였다니까.

(눈가에 눈물이 차오른다. 침묵, 4초잔. 아래층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린다)

음식이 왔나 보다. (일어나서 마일스에게로 다가가 이마에 키스해 준 다음 레스토랑에서 온 배달원에게 문을 열어 주러 나간다. 뒤돌아보며 마일스에게 말한다) 어느 것으로 하겠니? 채식 메뉴랑 육식이랑?

(긴 사이. 억지로 웃으며) 둘 다요! (p283)



또, 모리스 헬러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시점에는 대부분은 “그"로 서술하였지만, 죽음을 경험한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전지적 작가가 모리스 헬러를 “너"로 지칭하며, 모리스 헬러의 행동들와 행동의 이유까지 친절하게 서술해 준다. 62세의 모리스 헬러조차 한 차례의 성장을 겪게 된다. 생각해 보면, 금융 위기 이후에 젊은 세대들의 반응과 중년층의 반응은 다르기 때문에, 모리스 헬러의 변화가 소설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모리스 헬러의 어머니)는 렌조의 어머니가 그랬듯이, 그들의 부모들 모두가 그랬듯이, 그들의 아버지가 전쟁에 나갔든 나가지 않았든, 전쟁이 시작되었을 때 어머니들이 열다섯 살이었든 열일곱이었든 스물둘이었든 전쟁의 아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이할 정도로 낙관적인 세대였다. 거칠고 믿음직하고 근면하면서도 약간은 어리석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모두 미국의 위대성에 대한 신화를 사들였고 베트남의 소년 소녀들과 조국이 병들고 파괴적인 괴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았던 성난 전후 세대 아이들인 자기 자식들보다 세상을 덜 의심하며 살았다. (p171)



그러나 그것이 바로 어머니가 태어난 세계의 특징이었다. 투지니 결단이니 여덟 번 쓰러지면 아홉번 일어나라는 식의 할리우드 영화 속 뻔하디뻔한 진부한 이야기들을 기워 붙인 윤리적 우주였다. 그 나름대로 감탄스러운 점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세월이 갈수록 그는 그중 상당 부분은 가식이었음을, 겉보기에는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을 것만 같던 어머니의 내면에도 공포와 두려움과 견디기 힘든 슬픔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pp172-173)



1월 25일 우리는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고통과 슬픔이 누적되어 더 많은 고통과 슬픔을 견디는 능력이 약화된다. 그러나 고통과 슬픔은 피할 수 없기에, 말년에는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젊은 시절의 큰 비극에 맞먹는 힘으로 울릴 수도 있다. <낙타 등을 부러뜨리는 것은 마지막으로 올린 지푸라기 한 가닥이다.> (p285)



나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혹은 죽음 직전의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마도 모리스 헬러의 변화는 베트남 전쟁 이후의 ‘팍스 아메리카나'와 이후의 하락기,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로 대변되는 ‘상실'의 크고 작은 충격들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질겁하고 생각해보고 깨닫는 과정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너는 그녀가 얼마나 어린지 듣고 질겁했다. 그러나 잠시 생각해 보고 나서 아들이 그 나이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만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들의 삶은 중도에 멈추어 제대로 자연스럽게 성장하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다 자란 성인 남자일지라도 내적 자아는 열여덟 살과 열아홉 살 어딘가쯤에 머물러 있다. (p299)



이제 마일스 헬러의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마일스 헬러는 극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의 이야기를 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수위 조절을 고민하기 이전에, 사실 작품을 읽으면서, 마일스의 부분에서는 ‘let me in peace’/‘Lass mich in Ruhe’를 많이 떠올렸다. 한국이라면 이렇게 내버려두지 않았겠지, ‘힐링’해야 하고, ‘독설’을 들어야 하고, 과거에서 현재로 빨리 돌아서지 못한다며 닥달 받았겠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오는 일, 현재를 현재로 받아들이고 살아내는 일은, 결국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다. 마일스 헬러가 그랬듯이. 쓰고 보니, 마일스 헬러에 대해 쓸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인 듯 하다. 

나머지는 작품을 직접 읽는 것으로, 그래서 결국 “폴 오스터는 폴 오스터다, 그와 같은 세대에 살아, 그의 신작을 바로 읽을 수 있음이 기쁘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 짓게 될 것이다. (라고 추측해 본다.)



대학을 그만두고 제 힘으로 독립한 이후로 7년 반 동안 그가 뭔가 이룬 것이 있다면 현재를 사는 것, 지금 여기 말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와 같은 능력이었다. 남들 눈에 칭찬할 만한 성취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나름대로 상당한 수련과 절제를 통해 얻은 능력이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다시 말해서 그 어떤 열망이나 희망도 갖지 않고, 주어진 운명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세상이 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최소한의 것만을 원하는 듯이 사는 것. (pp10-11)



버스가 여행의 마지막 구간인 워싱턴 북부에 들어섰을 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음을 실감했다. 소년 시절에 보낸 겨울의 추운 낮과 긴 밤이 떠오르고 갑자기 과거는 미래로 바뀌었다. (p75)



아니, 자퇴는 복수이자 태업이라는 적대적인 행위, 상징적 자살이었다. 며칠 전 아파트에서 엿들은 대화가 가져온 결과라는 점을 모리스는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p189)



잡담은 할 줄을 몰랐으며 자신의 비밀을 누구하고도 나누지 않으려 했다. 마일스는 전쟁에 나갔다 온 것이다. 모든 병사들은 고향에 돌아올 때에는 늙은 남자들이며 자기들이 치른 전투에 대해서는 절대 말하지 않는 과묵한 남자들이다. 마일스 헬러는 대관절 어떤 전쟁으로 행군해 갔을까, 어떤 것을 보았을까, 얼마나 오래 전쟁터에 있었을까? 알 수 없지만 그가 상처 입었다는 것, 결코 낫지 않을 내면의 상처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p253)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게 다예요. 더 나은 사람, 더 강한 사람이 되는 거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 좀 공허하기도 하지요.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4년 동안 대학에 가서 전 과정을 이수했다고 증명해 주는 학위증을 받는 식이 아니잖아요.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 길이 없어요. 그래서 더 나아졌는지 아닌지도 모른 채, 더 강해졌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채로 그냥 계속 밀고 나갔어요. 한참 지나니까 목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노력 자체에만 집중하게 되었어요. (사이, 또 와인 한 모금을 마신다)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저는 투쟁에 중독되어 버렸어요. 저 자신을 놓쳐 버리고 만 거죠. 계속 죽 해나갔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더는 모르게 되었어요. (p281)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정말 마무리. 이 책을 읽으면서, 아마도 십여년만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아래의 구절을 읽다가는, 역시 오랜만에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제 그는 한겨울 베네치아의 눅눅한 냉기, 거리로 무릎 높이까지 넘쳐흐른 운하, 불기 없는 방들의 몸이 떨리는 외로움, 그 속의 어둠의 힘에 부풀어 올라 터져 버리는 머리, 이 너무나 맑고도 너무나 작은 세계에 의하여 파열해 버리는 삶에 대하여 생각했다. (p153)






위대한 개츠비(세계문학전집 75)

저자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출판사
민음사(주) | 2010-07-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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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Beckett, Samuel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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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