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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05 [Sophie' Story] 씩씩하게 늙자
[Story]2013. 4. 5. 00:19




오늘은 영화 이야기. 

백두대간에서 배급하는 콰르텟이라는 영화를 풍월당에서 시사회를 해서 운좋게 당첨되어 날씨가 좋은 토요일 오전에 어머니와 다녀왔다. 백두대간도 풍월당도 내가 좋아하는 공간이지만, 오늘의 이야기의 주제는 콰르텟과 어머니이니 옆으로 새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간다. 

(시사회 내용 URL ☞ click)


더스틴 호프만 감독의 콰르텟은 밀라노의 '안식의 집'을 모티브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안식의 집은 베르디가 은퇴한 음악가들을 위해 세운 양로원으로 보통 베르디의 집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시사회에서 박종호 대표가 안식의 집 영상이며, 베르디의 콰르텟 영상이며 보여주어, 더욱 재미난 시사회였다. 이 영상들을 보고 더스틴 호프만은 영화를 구상했다고 한다. 영화 콰르텟의 배경은 영국의 은퇴한 음악가들의 양로원인 비첨하우스로, 이 음악가들의 양로원은 재정위기에 처한 상태이다. 그래서 운영금 마련을 위한 갈라콘서트를 기획하는데, 외모와 함께 늙어진 목소리와 연주로 꾸며지는 음악회 준비 과정에서의 에피소드들을 다룬다.  





콰르텟 (2013)

Quartet 
9.3
감독
더스틴 호프먼
출연
매기 스미스, 마이클 갬본, 빌리 코널리, 톰 커트니, 폴린 콜린스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영국 | 98 분 | 2013-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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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충분히 매력적이고, 재미있고, 또한 감동적이다. 무엇보다도 내게 감동이었던 것은 기네스 존스 여사가 젊은 시절에 녹음한 연주가 아닌, 늙어진 목소리로 영화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OST에도 그 연주를 담았다는 점이었다.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나이 먹은 목소리로 일부 불안정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어쩌면 그 목소리가 더해져 영화가 더 감동적이고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것 같다. 분명히 절정기의 연주도 아름다웠겠지만, 현재의 연주도 목소리도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노년의 오드리 헵번의 사진처럼 기네스 존스 여사의 목소리도 흔히 인용되는 문구인 'GROWING OLD IS MANDATORY. GROWING UP IS OPTIONAL'의 멋진 예시였다.


영화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재미있었냐고 물으니 '재미있었는데 마냥 웃을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 하신다. 이들의 노년이 비단 남의 이야기 만은 아니기 때문인 듯 하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니까. 내가 어머니의 나이듦을 실감했던 때는, 2011년 연말의 홍콩 여행 때였다. 사실 홍콩 여행은 어머니와 나, 여동생 세 모녀의 첫 해외동반여행이었다. 내 기준에 홍콩은 거리도 멀지 않고, 도시내 이동이라 괜찮을 줄 알았지만, 어머니의 체력은 내 추측과는 달랐다. 그 해 봄에 산티아고의 길을 일주일 가량 다녀오셨기 때문에 과신한 부분도 있고 워낙 동안이시라 지하철은 공짜로 타시지만 자리양보는 받아본 적이 없어서 나도 어머니에게는 세월이 멈췄나보다 했지만, 그러려니 하는 나의 어림짐작과는 꽤 달랐다.


이제 안경이 늘상 있어야 하고, 더는 빠른 걸음일 수 없고, 끼니를 거르면 기운이 없고, 내가 한살한살 나이를 먹는 동안에 우리 어머니는 두살두살 나이가 차올랐나보다. 그런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고 재미있었는데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고 계속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여전히 꿈꾸는 문학소녀 이지만, 이제는 본인의 한계를 자주 체감하신다. 


그래서 이 시를 보고 어머니가 떠올랐다.




참 우습다


최승자


작년 어느 날

길거리에 버려진 신문지에서

내 나이가 56세라는 것을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아파서

그냥 병과 놀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내 나이만 세고 있었나 보다

그동안은 나는 늘 사십대였다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





쓸쓸해서 머나먼

저자
최승자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0-01-11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상징적인 사유로 다시 돌아온 시인 최승자!등단 서른 해를 맞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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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와, 솔직히 이야기 하자면, 나는 홍콩 여행이 힘겨웠었다. 회사 생활이 유난히 힘겨웠고 외로웠던 2011년을 마치며, 휴가를 거의 사용하지 못해서 12월에 몰아써야 하는 상황이었고, 급작스럽게 여행을 준비하기에도 빠듯했다. 그 때는 다시 내부로 침잠하던 시기라, 혼자 여행을 떠나 아무런 교류도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가 컸었는데, 어찌저찌 하여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저런 상황들이 다 힘겹기만 했는데, 생각해 보면, 나 어릴 적에 씩씩하게 잘 걷고, 열심히 봉사하러 다니고, 어두운 새벽미사에 나를 데리고 다니던 어머니도 아마 삶이 힘겨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자식에게 티내지 않고 씩씩하게 삶을 사셨을 것이다. 꿈꾸던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긴긴 세월을 사시고, 이제와 어머니에게는 늙어진 다리와 뿌옇게 보이는 눈이 남겨졌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지금 힘겨운 것들 역시 씩씩하게 티내지 않고 살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누구에게나 힘겨운 것이지만, 힘겨운 티 내며 살아갈 것이냐, 티내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냐는 개개인의 문제이니까. 


영화속에서 씨시가 늘 이야기 한다. "씩씩하게 늙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씩씩하게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흐르르흐르르 웃어야 할 때도 포르르포르르 웃으면서! 


이제 누군가 내 나이를 들으면 '어?'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그 만큼의 나이를 사는 동안에 우리 어머니는 그 두배가량의 시간을 살아내셨다. 씩씩하게 살아낸 그 시간 덕분에 우리 어머니에게도 기네스 존스 여사의 늙어진 목소리 만큼의 연륜의 아름다움이 있다. 삶은 결국, 살아내는 자의 것이므로 그 아름다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의 씩씩한 나이듦에 보탬이 되고자 주말이면 화선지를 접는다. 어머니는 요즘 재미나게 서예를 배우고 계신다.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