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짜증을 견딜 수 없는 날, 못 견디게 모든 것이 버거운 날. 그런데 그런 날을 여러 사람이 함께 겪으면, 그 짜증의 응집력은 커진다. 한 사람 정도는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하고, 또 그 사람이 나이면 좋겠으나, 사실은 나도 내 짜증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있는 날, 오늘은 그런 날이였다. 짜증을 견딜 수 없는 날. 그래서 괜시리 모든 것이 억울해 지는 날.
그런데 문득 재미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시 때문이다.
긴 호흡
- 박노해
직선으로 달려가지 말아라
극단으로 달려가지 말아라
사람의 길은 좌우로 굽이치며 흘러간다
지금 흐름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 때
머지않아 맞은 편으로 흐름이 바뀌리라
너무 불안하지도 말고 강퍅하지도 마라
오른쪽이건 왼쪽이건 방향을 바꿀 때
그 포용의 각도가 넓어야 하리니
힘찬 강물이 굽이쳐 방향을 바꿀 때는
강폭도 모래사장도 넓은 품이 되느니
시대 흐름이 격변할 때
그대 마음의 완장을 차지 마라
더 유장하고 깊어진 품으로
새 흐름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라
삶도 역사도 긴 호흡이다.
점심 때 후배가 잠시 회사에 들른다고 해서 기다리며 도서관에서 휘리릭 넘겨본 시집. 이 시집이 좋아서 한 권 사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이 시 사진을 찍어두었었다. 또 까마득히 잊고 오후와 저녁을 보내고, 방에서, 억울해 하던 차에, 문득 이 시 생각이 났고, 다시 읽었고, 그래서 웃었다.
나의 무의식은 알고 있었을까? 내가 그런 오후와 저런 저녁을 보내고 이런 밤을 보내리라는 것을. 그 때에 이 시가 내게 위로가 되리라는 것을. 삶도 역사도 긴 호흡 이니 이렇듯 억울해 하지 말라는 위로가 내게 필요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런데, 이 시의 하이라이트는 시집의 제목이다. 시 한 수 한 수 아름답지만, 시집 제목이야 말로... 최고의 한 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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