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배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6.02.19 [Sophie' Story] 딸의 엄마 2
[Story]2016. 2. 19. 19:56

딸의 엄마가 되었다. 딸의 엄마가 되고 말았다. 딸의 엄마가 드디어 되었다.

같은 사건이지만 의미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


딸의 엄마가 되었다.


여느 엄마들과 딸들의 말다툼의 끝이 그러하듯이, 말다툼 끝에 엄마에게 듣던 문장.

"너도 너 같은 딸을 낳아봐라"

이런 엄마의 바람?!대로 나는 딸의 엄마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닮았지만 나보다 예쁘다고 하지만, 순간순간의 표정들에서 나의 어릴 적 앨범 속의 나의 모습들을 발견하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도 나의 딸에게 "너도 너 같은 딸을 낳아봐라"라고 말하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나는 딸의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었다.


딸의 엄마가 되고 말았다.


미리 오해를 막고자 이야기 하자면 나는 내 딸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더 딸의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하면 이해가 되려나, 더 이해가 되지 않으려나. 이 글(☜클릭)에 적은 바 같이, 사회에서 여성이 구성원이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여자 구성원이 될 수는 있지만, 그냥 구성원이 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일들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이미연 배우의 인터뷰(☜클릭)를 보고 나는 또 다시 생각했다. 특히 이 대화.


[앵커]4년 뒤면 지천명이신데. (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떤 고민이 있습니까, 여배우로서는?


[이미연/배우 : 사실 왜 저는 가끔 그런 의문은 들어요. 왜 남자배우한테는 남자배우라는 얘기를 쓰지 않고 여자배우한테는 여배우라는 말을 쓰는지 어찌 보면 그걸 잘 이용하면 되게 편안하게 배우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별로 그 표현이 마음에 들지는 않고요. 글쎄요. 아직까지도 연기도 잘하면서 늙지도 않고 이러기를 바라시는 것 같아요. 많은 대중분들이나 관계자분들이. 그런데 그거를 적절한 수위에서 맞춰가면서 내 나이듦이 부끄럽지 않게 나이를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여자차장이 되고 여자팀장이 되어가는 동안 느끼는 그 이야기를, 여배우의 입장에서도 느끼고 있다는 점이 어쩌면 당연하면서도 무척 속이 쓰렸다. 나의 딸.

언젠가 나의 싸이월드 게시판에 썼던 글인데, 문맥상 통하니까, 짧게 정리하자면, 나의 존경하는 교수님도 딸의 아버지셨다. 그래서 몇몇 여자제자들에게 "사회에서 여자가 일하기가 힘든 것 안다. 지금처럼 너희가 잘 버텨주렴, 그래야 나의 딸이 사회에 진입할 때 버팀목이 되어 주지."라고 하셨었다. 그러다가 몇년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말 미안한데, 나는 나의 딸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당시에 이 이야기가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맞는 말씀이라 마음이 쓰리기만 했는데, 이제는 내 딸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딸의 엄마가 드디어 되었다.


아기는 내 생각에는 매일매일 선형그래프를 그리며 성장하는 것이 아니고, 때가 될 때마다 한단계씩 성장을 하는 것 같다. 때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기도 하고, 어느날엔 부쩍 성장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을 매일매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육아휴직 기간은 달콤하다. 솔직하게, 달콤한 동시에 쌉싸름하기도 하다. 매일매일을 성장을 하고 회사에 나가 회의를 하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나는 사랑한다. 그래서 요즈음 몸이 근질근질 하기도 하다. 요즘 나의 대화의 대부분은, 응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께, 응 엄마랑 맘마 먹자, 응 엄마가 마사지 해줄께, 엄마가 책 읽어줄께, 응 엄마 화장실 다녀올께이니, 몸이 근질근질한 것은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아이가 스스로 앉는 것을 볼 수 있기를, 서는 것을 볼 수 있기를, 걷는 것을 볼 수 있기를, 그 성장의 순간순간에 늘 함께 하기를 마음으로 바라게 되는 딸의 엄마가 되었다, 드.디.어.

이런 욕심을 중간에 끊고 나는 여느 때처럼 성장을 하고 회사로 아침마다 출근을 하게 될 것이다. 평생 내 이름 석자가 박힌 명함을 가지고 살거라는 다짐(갑이라면 명함이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약간 절망도 했었지만)을 나는 지킬 것이다. 나의 딸의 세상에서는 겨우 이런 일이 다짐을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거창한 마음도 있지만, 나의 삶을 너를 위해 희생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일할 것이다. 내 딸의 삶을 내 딸이 잘 살아내기를 도와주기 위해 나는 그저 살아낼 것이다. 그것이 드디어 딸의 엄마가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Posted by Sophie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