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y w/MOM] #001. 여행이 가능할까요?
적어도 매년 한 번 이상은 휴가여행을 다녀오는 나는 여행 사진도 내가 보기 위해 정리하며, 여행 이야기도 일기장이나 마음 속에 적어둔다. 그런 내가 이번 가을 여행이야기를 적어둘까 생각이 든 것은 나에게는 이번 여행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부한" 이태리 여행 이야기를 굳이 시작해 본다.
(1) 나는 5년 단위로 장기근속 휴가를 주는 회사를 다니고 있고, 올 7월로 현 직장을 다닌지 5년이 되었다. 올초 회사가 합병되며, 5년근속 휴가가 calendar day 기준 10일에서 working day 기준 10일로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주말까지 합쳐 최장 16일간의 휴가가 가능해진다
(2) 곧 칠순이 되실 어머니의 바람 중 하나는 바티칸을 포함한 이태리 여행을 가고 싶다. 그런데 서부 유럽은 많은 분들이 이미 다녀오셔서, 지인분들과의 여행지로 이태리가 선택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런 두 가지 사건들이 만나면... "어머니를 모시고 2주일간 이태리 여행"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올해초부터 비행기부터 2주간의 자유 여행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잠깐!
스위스에서 교환학생을 했던 04년부터 나는 보통 base가 되는 하나의 도시에 대부분 머물고, 당일이나 1박2일 여행을 다녀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당연히 그 때는 내가 머무르던 생갈렌에서 밤기차나 새벽기차를 타고 여행을 다녀온 것), 도시들을 이동하는 여행은 잘 하지 않는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물수록 그 도시와 친구가 되고, 어느날 문득 그 도시가 떠오르는 "여행도시에 대한 향수"가 내게로 오는 순간들을 즐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싫기도 하다. 그래서 마지막 도시이동여행은 '09년 동생과 함께한 스페인도시투어였다. 열흘간 바르셀로나-마드리드-톨레도-코르도바-그라나다-세비야-바르셀로나를 다니는 루트였는데, 힘들어서 중간에 멀미도 했었다. 그 이후 '10년 뉴욕, '11년 홍콩, '12년 엘에이로 휴가를 다녀왔기에, 유럽여행도 오랜만, 도시이동여행도 오랜만이라, 긴장반 기대반의 여행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어머니"가 여행에 더해지니, 기대보다는 긴장이 더 큰 여행이었다. 보통의 가이드투어는 전용버스 타고 이동하고 현지 가이드가 있으니, 짐을 드는 일이 거의 없고, 길을 잃거나 헤매이는 경우도 적을 텐데, 도시이동자유여행이니 짐을 끌고 다니고, 길도 잃고, 줄도 서야 하고, 더군다나 로마의 꼬마집시에게 당한 기억이 있는 나에게 이태리가 가진 "소매치기"의 나라 이미지까지 겹쳐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보통 비행기 예약/결제를 마치면, 대책없이 여행을 떠난다. 평소에는 계획 세우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잘 하니, 여행에서만이라도 아무 계획 없이 되는 대로 시간을 보내보자는 일념으로, 도착 후 숙소까지 가는 교통편 대책도 없이 여행을 떠나는 게으른 여행자인데, "어머니"와 함께 라니, "휴가"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많았다.
그래서 이건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라 가정하고 하나하나 문제들을 풀기 시작했다.
우선 비행기. 대한항공의 홈페이지에서 여행 6개월 전에 e알뜰티켓을 구매했다. 물론 하루이틀의 시간을 더 벌 수 있어 평소에 선호하는 밤비행기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태리 땅을 밟기도 전에 어머니의 체력이 소진되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낮 비행기 타고 직항으로 가기로 했다. 대한항공의 운항 스케쥴에 맞춰 밀라노로 들어가 로마에서 나오는 일정이 확정되었다. 대한항공은 인천-밀라노가 직항이고, 로마를 갈 경우에는 인천-밀라노경유-로마로 들어가기 때문에 로마에 도착하면 밤시간이 되고, 그럴 경우 공항에서 호텔로 가는 여정도 일이 되었다. 그래서 최초안인 서울-로마-피렌체-베니스-밀라노 안이 반대의 루트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다음 고민은 숙소. 나는 한국민박을 싫어하는 편이다. 여행 중에 한식을 먹을 이유도 없고, 나이부터 묻고 보는 한국 정서에서 열흘동안이라도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여행에서는 한국민박을 두고 꽤 고민했다. 바로 한식 때문이다. '11년에 어머니와 나, 여동생 셋이서 홍콩 여행을 할 때, 어머니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이미 어머니는 여행 중에 한식을 먹어야 입맛이 도는 연령대로 진입한 것을 체감했기 때문에, 어쨌든 중간중간 한식을 먹어줘야 했는데 그 때는 다행히 선배의 집에 기거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내가 한국민박에서 편히 쉴 자신이 없었다. 가이드 역할을 수행하는 내가 편히 쉴 수 없다면 여행이 더 고단할 것으로 예상되어, 오랜 고민을 통해 하루만 한국민박에서 숙박하고 좋은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대신 좋은 호텔은 짐들고 가장 덜 헤매이기 위해 도시별 중앙역에서 가깝고 시설이 좋은 호텔로 정했다.
대신, 첫 배낭여행 이후로 가져가 본 적이 없는, 컵라면과 햇반을 가져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사실 이런 긴장감이 현실화 되기 전에 여행 자체가 불투명해졌었다. 내가 갑자기 TFT에 들어가게 되었고, TFT에서 관할하는 브랜드의 런칭일이 10월1일, 여행 출발일이 10월4일 이었다. 직장생활 1X년만에 처음으로 10월 휴가를 기획하였는데, 역시 가을휴가는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연초부터 어머니에게 헛바람 넣고 만 꼴이 되는가 하는 생각과, 가을에 장기근속휴가 가려고 연차휴가 사용도 안 하고 있었는데 슬프다, 역시 휴가를 미리 계획해봐야 소용 없고 한달전에 준비해야 가능한 것인가 등등의 생각들이 꽤 많이 들었다. 어머니도 기차타고 하는 2주일간의 여행은 좀 힘들 수도 있겠다는 의견이시라, 결국 중재안으로 열흘짜리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연차 휴가를 쓰고 2주일짜리 장기근속 휴가의 사용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어쨌든 결국은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기내용 캐리어 두 개를 들고, 그 중 하나인 내 가방에는 미니포트(500ml max)와 개별포장된 유자차와 보온병, 햇반과 3분카레, 컵라면, 유니클로 울트라라이트패딩을 넣고 1월부터 계획되기 시작한 여행을 결국에는 떠나게 되었다.